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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

농이터 2020. 6. 25. 16:50

6·25전쟁 70주년,

우리민족의 아픔,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

 

6·25 전쟁일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 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기념하기 위한

법정 기념일입니다.

6·25전쟁의 배경


일본 패망 후 한국을 독립시킨다는

카이로, 얄타 등에서 이뤄진

국제 합의가 있었으나 38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을 분할한

미국과 소련 군정에 의해

한반도는 잠정 분단 상태가 되었고,

1948년 남한에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북한에는 '공산주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두 개의 단독정부가 수립되며

이념적 대립과 냉전은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6·25전쟁 전개과정

/ 북한의 남침 /

(1950년 6월~9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국이 기습적으로 불법 남침을

강행하여 개전 3일 만인 6월 28일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거센 기세로

남쪽을 향해 내려갑니다.

이에 유엔은 사상 최초로

집단 안전보장 조치에 따라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유엔군(국제연합군)을 파병하였고,

1950년 7월 4일.

국군과 함께 북한군을 저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8월 초 낙동강 방어선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북한군 공격을

결사적으로 저지하였습니다.

 

6·25전쟁 전개 과정

/ 국군·유엔군 반격 /

(1950년 9월~11월)


낙동강선 방어에 성공한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며

전쟁 발발 97일 만에

수도 서울을 탈환하고,

전쟁 이전의 상황을 회복하는데요.

남쪽으로 내려온 북한군의

전쟁 보급로를 끊어 버리고

국군과 유엔군은 38도 선을 넘어,

평양과 압록강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6·25전쟁 전개과정

/ 중공군 개입과 재반격 /

(1950년 11월~ 1951년 6월)


1950년 10월 25일 중공군의

1차 공세가 시작되고, 2차 공세에 이은

3차 공세(12월 31일~1951년 1월 8일)로

38선을 돌파하자 유엔군은 결국

1951년 1월 4일 수도 서울을 포기하고

전략적 후퇴를 한 후 반격 작전을 준비하다

1월 25일 일제히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유엔군은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고,

3월 말 38도선을 다시 회복합니다.

 

6·25전쟁 전개 과정

/ 휴전 협정 체결 /

(1951년 6월 ~ 1953년 7월)


지속되는 전쟁 상황에서 소련은

'전쟁을 그만 멈출 것'을 제안했고,

유엔과 북한군 사이에 휴전 회담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휴전 협정 회의는

무려 25개월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6·25전쟁이 발발한 지

3년 1개월 만인 1953년 7월 27일,

북한군, 중공군, 유엔군 측의 미군 대표가

휴전 협정에 서명하면서 마침내

전쟁은 중단되었습니다.

6·25전쟁 피해


한반도 전 국토는 황폐해졌으며

주요 시설물은 거의 파괴되었습니다.

국가기록원의 자료를 살펴보면

6·25 전쟁 동안 국군 전사자 수는

약 13만 8천 명,

민간인 사망자 수는 약 25만 명 이상이며,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가 생겨나고

가족과 헤어져서 찾지 못하는

이산가족이 생겨났습니다.

 

6·25전쟁 역사적 의미


휴전상태로 전쟁이 끝나지 않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한반도.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는데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호국 영령의 넋을 기리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희생 뜻을

되새기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