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하고 죽었다.
민주주의를 열망한
한 젊은 친구의 죽음으로
6월 민주항쟁의 불씨는 타올랐습니다.
6월 민주항쟁
6월 항쟁은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6월 29일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민주화 운동입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4·13 호헌 조치, 그리고 이한열 열사가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은
1987년 1월 13일 자정 경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연행되었습니다.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 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받고 있었던 박종운을 잡기 위해
연행한 것이었는데요.
박종철이 순순히 대답하지 않자
경찰은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하였고
끝내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라고
사망원인을 발표했습니다.
참고자 신분으로 취조를 받았던
박종철의 사망은 시민들의 마음의
불씨에 불을 붙였고,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무시한
'4.13 호헌조치'가 발표되자
국민들의 민주화 투쟁 열기는 고조되었습니다.
이후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은폐 · 축소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고,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이었던
이한열이 시위 과정에서 최루탄에 의해
부상(7월 5일 사망)을 당하며
민주항쟁의 시위 규모는
더욱 커졌습니다.
6월 민주항쟁 전개
6월 10일, 잠실체육관에서는
민주정의당의 전당대회가 열렸고
노태우가 민정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한편 시민과 학생은
서울 도심지 곳곳에서
'고문살인 은폐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시위대는 경찰을 피해 명동성당으로
들어갔고, 명동성당으로 들어간
시위대는 6월 15일 농성을 해제했습니다.
이러한 6일 동안의 명동성당 농성은
6월 민주항쟁에서 매우 의미 깊은 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시위는 날이 갈수록 점점 다양한 장소에서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시위에 시국 수습을 위해
6월 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하는
'6·29 선언'을 발표하였으며,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이
6·29선언 수용 입장을 밝혔고
6월 항쟁은 시민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6월 민주항쟁 의의
6월 항쟁은 군부 독재 정치에 종식을 고하고,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가 뿌리내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사회 전반에 걸쳐
전국적으로 전개된 항쟁이었으며,
이로써 대통령 직선제 등의 내용을 담은
대한민국의 9번째 개헌을 이루어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문장을 지켜내기 위해
싸워온 이들이 있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내용 및 사진 출처 _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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