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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기록, 5·18민주화운동 알아보기

농이터 2020. 5. 18. 16:53




아시아 민주화운동의 희망.

오월의 기록.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5·18민주화운동 이란?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 열흘 동안.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진압에 맞서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이

'비상계엄 철폐',

'유신세력 척결' 등을

외치며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항거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계엄군에 의해 진압당한 이후

5·18민주화운동은 한때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으로

매도당하기도 했으나,

진상규명을 위한 끈질긴 투쟁으로

1997년 5월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으며,

올해 제4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계기



1960~1970년대까지

군사독제 체제로 인해 민주주의를

염원했던 우리나라 국민들은

박정희의 사망으로

민주주의의 혁명이 이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신군부가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12·12군사정변'을

일으켰고, 이에 전국의 수많은

대학생은 학원의 자율화와

민주화를 요구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진행



5월 14일.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이던

박관현을 필두로 대학가와

전남도청 일대에서 거리시위가 벌어졌고

이에 5월 18일 계엄군은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막아 세운 후

항의하는 학생들을 구타하고

연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엄군은 학생뿐만 아니라

만류하던 시민까지도 폭행했고

계엄군의 잔인함에 분노한 시민들의

항의가 거세지고 집단화되자,

계엄사령부는 광주 지역의

통행금지 시간을 7시로

조정했습니다.

5월 19일 새벽 3시경

증파된 계엄군이 광주역에 도착하며

시민과 계엄군의 격렬한 대치와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5월 21일, 이윽고 광주와

외부를 연결하는 전화가 차단되었고

계엄군이 저지선을 돌파하려는

시민을 향해 총을 난사하자

시민도 스스로를 무장하며

'시민군'이란 이름으로 계엄군과의

공방 끝에 계엄군이 전남도청에서

철수하게 되었지만,

5월 26일, 계엄군은 다시 탱크를

앞세워 도청으로 향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결말



5월 27일 새벽.

교전 시간은 1시간 남짓에 불과했고,

많은 시민군은 시신으로 남겨졌으며,

계엄군의 무력진압으로 시민들의

저항은 끝나게 되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되었고,

군부독재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

87년 6월 항쟁의 밑거름되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그 후



5·18민주화운동은 광주를 비롯한

전 국민적인 저항과 참여,

연대의식으로 오늘날 세계 곳곳에

중요한 민주화운동 사례로

알려지고 있으며,

2011년 5·18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오늘만큼은 민주주의를 염원하던

희생자분들의 넋을 기리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