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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외친 최초의 민주화 운동 2.28민주운동

농이터 2020. 2. 28. 13:40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별들아"


"학원의 자유를 달라"



학생들이 외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

2.28민주운동





  2.28민주운동 



이승만 독재 정권의 부정과 부패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대구 지역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




2.28의 시대적 배경과 발단



발췌개헌과 사사오입개헌이라는 비민주적 개헌과정을 통해

장기 집권을 위한 독재 권력을 강화한 자유당 정권.



1960년 3월 15일 실시될 예정이었던

제4대 대통령선거 및 제5대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 이승만, 부통령 후보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

모든 불법적인 수단을 총동원했는데요.



하지만 강력한 야당 부통령 후보이자 현직 부통령이었던

장면으로 인해 이기붕의 당선을 자신할 수 없게 된 자유당 정권.



2.28민주운동은 이런 배경 속에서 장면 박사의 유세장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대구의 8개 공립 고등학교에 일요일 등교 지시를 내린 것이

발단이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일요일 등교의 명분은 조기 중간고사, 영화관람,

토끼사냥 등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일요등교 방침이 알려진 직후부터 각 학교에

일요등교를 철회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2월 27일 오후 경북고 이대우 학생부위원장의 집에

경북고, 대구고, 경북대사대부속고 등의 학생들이 모여

부당한 일요등교에 항의하기 위한 시위를 조직하기로 하고

상호 연락망을 구축하고 결의문을 작성했습니다.



2월 28일.

경북고 학생부위원장 이대우 등이

학교 조회단에 올라 전날 작성한 결의문을 낭독했고,

결의문 낭독은 격앙되어 있던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학생들은 자유당 정권의 불의와 부정을 규탄하며

일제히 궐기했고 학교를 뛰쳐나갔는데요.


이로써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초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횃불이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2.28의 전개



28일 오후 1시경 경북고생 800여 명이

대구 중심부인 반월당을 거쳐 경북도청으로 향했으며,

대구고 학생들도 가두시위를 시작하며

대구는 불의를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함성으로 뒤덮였습니다.



시민들은 경찰에게 구타당하는 학생들을 숨겨주고

시위대에 박수 치며 동조했고, 나머지 6개의 학교 학생들과

시민들까지 합세해 저녁 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는 계속됐습니다.





이날 시위현장에서 약 220여명의 학생들이

경찰에 체포됐고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면서

각 학교의 교사들도 모진 책임추궁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이승만 독재에 움츠렸던 대구지역 언론은

어린 고등학생들의 용기에 힘을 얻어

'2.28대구학생의거'를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마산, 대전, 부산, 서울 등으로 학생시위를

확산시키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2.28의 함성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이정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2.28의 역사적 의미



2.28은 단순히 일요일 강제 등교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닌 부정부패와 무능, 독재 권력에 대항한

학생들의 외침이었으며,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뿌리로서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민주주의 실천 운동이었습니다.





(사진 및 내용출처 :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http://www.228.or.kr/fr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