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3.1
대한독립만세!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대한(조선)독립 만세!
우리는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
1919년 3월 1일부터 수개월에 걸쳐
시민 다수가 자발적으로 봉기하여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 제국의 한반도 강점에 대하여
저항권을 행사한 한민족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이었던 3.1운동
- 3.1운동의 과정 -
1918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를 위한 '14개 원칙'을 발표하였습니다.
그중 '각 민족은 스스로 민족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는 민족 자결주의와
1919년 2월 8일 도쿄에서 발표된
2·8 독립선언서의 영향으로 전개된
3.1운동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 대표 33인 중 29인은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습니다.
하지만, 민족 대표 중 최린이 태화관 주인에게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게 하여
민족대표 일동이 여기에서 독립선언서를 거행하고 나서
축배를 들고 있다고 통고하였고,
이로 인해 참석자 모두 일본 경찰에게 연행되었습니다.
한편, 오후 2시 탑골공원(당시 파고다공원)에서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인물이 단상으로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습니다.
독립선언서의 낭독이 끝날 무렵, 군중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거리로 나가 만세시위운동을 벌였습니다.
- 3.1운동 인물 -
한용운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승려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저항 시인.
호는 '만해'이며, 3.1운동 때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불교계를 대표해 참여한 인물입니다.
또한 한국문학사에서 한용운 선생은
근대적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한용운 선생의 88편의 시를 모아 발간한
1926 <님의 침묵> 이라는 첫 시집은
지금까지도 꼭 읽어야 할 픽독서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유관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아우내 장터에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한 인물입니다.
법정에서
" 나는 한국 사람이다. 너희들은 우리 땅에 와서 우리 동포들을
수없이 죽이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였으니
죄를 지은 자는 바로 너희들이다.
우리들은 너희들에게 형벌을 줄 권리는 있어도
너희들은 우리를 재판할 그 어떤 권리도 명분도 없다" 고 하면서
일제의 재판을 거부하는 당당함과 민족적 기개를 잃지 않았습니다.
서대문감옥으로 이감된 유관순 열사는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게 됐으며,
결국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순국하셨습니다.
그 후 2019년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가 서훈되었습니다.
1949년 10월에 국경일로 정해진
3월 1일 삼일절
이날만큼은 일본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순국선열의 독립 정신과 희생정신을 기억하고,
추모 · 애도하는 묵념을 올리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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