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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꿀 한 스푼

잊지 말아야 할, 민족의 아픔. 제주 4.3

농이터 2020. 4. 3. 11:58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오랫동안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던

제주의 아픈 역사

지금이라도 꼭 기억해야 할

제주 4.3



제주 4·3 이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제주 4·3의 도화선 ‘3·1 사건’


1947년 3월 1일.

제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가 열렸고,

제주읍에서 북국민학교의 3·1절 행사가

끝난 후 군중들은 가두시위에 나섭니다.

시위대가 관덕정을 거쳐 서문통으로

빠져나간 뒤 관덕정 부근에 있던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여

다치게 되었지만, 기마경찰이 다친 아이를

그대로 두고 지나가자 흥분한 군중들은

돌을 던지며 항의했고

관덕정 부근에 포진하고 있던

무장경찰은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희생되었고,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며

제주 4·3의 도화선이라

불리는 ‘3·1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남로당 제주도위원회는

이를 계기로 3·1 사건 대책 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반경 활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1947년 3월 10일부터

민·관 합동 총파업이 시작되자,

미군정은 응원경찰을 대거 파견했고,

극우청년단체인 서북청년회

‘빨갱이 사냥’을 한다는 구실로 테러일삼았습니다.

이에 1948년 4월 3일

350명의 제주도민 무장대는

미군 즉시 철수와 우익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

남한 단독선거 및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조국의 통일 독립을 외쳤습니다.







4월 28일, 미군정과 무장대의

평화협상이 성사되었지만,

협상 사흘만인 5월 1일 우익청년단이

제주읍 오라리 마을을 방화하는

소위 ‘오라리 사건’이 벌어지고,

5월 3일 미군이 경비대에게 총공격을 명령함에 따라

협상은 파기되었습니다.







무장대는 5·10 선거*를 무산시키기 위해

주민들을 산으로 보내고

제주도 2개 선거구만이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가 되니,

미군정은 이를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저해하는 불순세력의 음모로 판단하여

강경 토벌작전이 실시되어

도민들이 집단 희생되었습니다.

(*5·10 선거 : 대한민국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해

실시한 첫 번째 국회의원 선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수립된 뒤 정부는 제주도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에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해안에서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대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하고, 이때부터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생하기 시작했습니다.







1949년 3월 “산에서 내려와 귀순하면

과거 행적을 묻지 않고 살려주겠다”는

방침의 선무공작이 전개되어

한라산에 피신해 있던

1만 명의 사람들이 하산했지만

선무공작 방침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1,600여 명이 총살당하거나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보내졌습니다.






1947년 3·1절 발포사건과

1948년 4·3무장봉기로

촉발되었던 제주4·3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2만 5,000~3만 명의 주민들이

희생된 가운데 7년 7개월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4·3이 종료 이후에도

연좌제와 국가보안법의 족쇄가

유가족들을 얽어맸으며,

고문 피해로 인한 후유장애 등

정신적 상처가 아물지 않았습니다.

50여 년이 지난 1999년 ‘제주4·3특별법’이 통과되며,

제주 4·3사건을 잘 몰랐던 국민들에게도

제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희생되었지만,

오랫동안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던

비극적인 우리의 역사

제주 4·3 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내용 및 사진 출처 : 제주4·3 평화재단)

https://jeju43peace.or.kr/